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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는 살아 있다 -신수현


신수현 작가

나는 초등학교 6학년, 그러니까 열세 살이 되어서야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고백했을 때 사람들은 “어머, 정말 순수하시네요.”라며 아름답게 포장해 주었지만, 그들의 눈빛 깊은 곳에 서린 감정은 동경이 아니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숙한 사람을 보는 짠한 연민이었음을 나는 안다.

하지만 억울하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내 순진함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다 철저하게 조작된 것이었다. 난 위로 여덟 살, 아홉 살, 그리고 무려 열두 살이나 많은 언니 둘과 오빠가 있었다. 어린 내가 의심의 싹을 틔우려 할 때마다 그들은 압도적인 나이 차에서 오는 권위와 과장되고 능청스러운 연기로 날 감쪽같이 속였다.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 나는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로 양말을 더듬었을 때 손으로 느껴지던 불룩한 촉감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양말 속에 있던 것은 과자였다. 양말에 쏙 들어갈 동그란 모양의 크래커가 대부분이었고, 가끔은 사각형의 촉촉한 쿠키 사이에 달콤한 크림이 발려있는 샌드가 있었다.

난 양말째 들고 엄마에게 달려가 자랑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간밤에 다녀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목격담을 진지하게 풀어냈다. 아침 밥상에 하나둘 모여드는 오빠와 언니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자신들은 직접 이야기까지 나눴다며 대화 내용까지 상세히 말하니 어린 나로서는 그것이 거짓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서로 미리 짜지도 않았을 텐데 호흡이 척척 맞아 떠들어대던 가족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난 참 행복한 아이였다. 난 그 밥상머리에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타고 왔다던 루돌프 사슴 썰매를 상상하며 기쁨에 젖었다. 나의 동심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엄마는 내게 이야기했다. 산타는 중학생에겐 선물을 주지 않는다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고 했다. 듣자마자 실망스러움이 손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번졌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어린이 딱지를 떼고 청소년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인지, 마냥 어린이로 남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한 단계 성숙해야 할 것 같은데 내 몸과 마음은 아직 성장과 성숙에 미미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엄마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충격적인 말을 듣고 난 다짐했다.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하니 기어코 산타를 만나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사실 그 의지는 처음은 아니었다. 매년 있었다. 하지만 잠이라는 것이 날 계속 무너뜨렸다. 속절없이 내려지는 눈까풀을 끌어올려 버틸만한 힘이 없었다. 난 잠이 많은 아이였다. 정말로 그랬다. 9시에 잠들어 6시에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였다.

어린이로서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 난 변함없이 양말을 머리맡에 두었다. 그리고 올해만큼은 절대 잠자지 않으리라, 기필코 산타를 목격하리라 마음속으로 백 번쯤 다짐했다. 어두운 방에서 눈을 부릅뜨고 잠을 자지 않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외딴 시골집의 고무판화같이 새까만 암흑 속에서 난 얼마나 버텼을까? 그럼 그렇지, 난 그만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을 이길 장사는 이 세상에 없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하늘은 날 버리지 않았다. ‘드르륵’ 하는 소리에 기적처럼 눈을 떴다. 방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오고 있었다. 드디어 산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내 가슴은 떨렸다. 갑자기 방안이 환해졌는데 손전등 때문이었다. 산타가 손전등을 가지고 다닌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난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다시 감고 부러 새근새근 소리까지 냈다. 그런 후 귀를 쫑긋 세웠다. 한 사람이 아닌 듯했다. 분명 둘이었다. 내 귀로 매우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먼저 흘러 들어왔다.

“뭘 갖고 싶대?”

“사인펜이요.”

“올해가 마지막이네.”

“안 그래도 벌써 말해놨어요.”

“무척 서운해하겠어.”

“엄청 실망스러운 표정이더라고요.”

아버지와 엄마의 속삭이듯 나누는 대화를 난 숨죽이며 들었다. 가슴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아버지는 손전등으로 내 머리 위쪽을 비추었고 엄마는 조용히 양말 위에 사인펜을 내려놓고는 서둘러 나갔다. 얼마 전 산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이냐고 엄마가 넌지시 물었을 때 난 열두 색 사인펜이라고 말했었다.

부모님이 나가자마자 난 눈을 번쩍 떴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일순간 맥이 빠졌다. 가족들이 오랫동안 날 속여왔다는 분노보다는 6년 동안 내가 꿈꾸고 상상했던 산타의 부재를 느끼니 쓸쓸함이 밀려들었다. 언젠가 같은 반 아이가 산타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죽거리던 것에 화가 치밀어 아니라고 박박 우기던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음 날 아침 산타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날 보며 엄마는 진정 어린이 딱지를 뗀 것이라며 내 등을 몇 번 두들겼다. 그 말에 난 조금 우쭐거릴 수 있었다.

얼마 전 지인과 어릴 적 향수에 대해 수다를 떨다가 크리스마스의 추억까지 흘러갔다. 자신은 양말을 걸어놨지만 한 번도 양말이 채워지지 않아 속상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난 깜짝 놀랐다. 다른 집 아이들도 나처럼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양말 속 선물을 받았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엄마, 아버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머리맡에 있던 양말에 선물을 넣었을 그 따스한 손길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훈훈해지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내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했을 부모님의 마음에 감동이 썰물처럼 밀려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언제나 뒤늦은 깨달음의 연속이 우리 삶의 방식인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도 산타를 믿는 아이가 있을까? 깊이 고민하거나 상상할 틈도 없이 곧바로 AI에게 ‘산타가 진짜 있나요?’라고 물어볼 것만 같다. 순수하고 정겹던 옛 정서가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산타가 있고 없고 물리적인 문제를 떠나 난 여전히 산타는 존재하고 있음을 믿는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손길, 기적을 믿는 마음에서 산타는 분명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곁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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