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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미리 마애석불의 ‘아기부처’와 이승만 대통령의 운명

파주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 자락에는 고려시대 거상들이 오갔던 의주대로를 굽어보는 거대한 석불이 서 있다. 보물 제93호로 지정된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일명 쌍미륵이다. 웅장한 두 불상은 수백 년간 이 땅을 지켜왔지만, 그 곁에는 한국 현대사의 권력과 영욕을 고스란히 품은 또 다른 작은 불상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바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세운 ‘동자불(아기 부처)’과 ‘7층 석탑’이다.

지역의 구전에 따르면, 이승만 대통령의 모친은 자손이 귀하던 시절 이곳 용암사를 찾아 마애석불 앞에서 간절히 득남 발원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그녀는 아들을 얻었고, 그 아이는 자라나 훗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10월, 이승만 대통령은 용암사를 방문했다. 그는 전란의 상처가 남은 국토를 돌아보며, 남북통일의 염원과 더불어 자신의 후손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특별한 지시를 내린다. 바로 마애석불 곁에 새로운 ‘동자상(아기 부처)’과 ‘7층 석탑’을 건립하라는 것이었다.

1년 뒤인 1954년 10월 28일 이승만 대통령과 함태영 부통령, 이기붕 국회의장 등 3부 요인은 물론 미국 대사와 미 해병사단장까지 참석한 성대한 제막식이 열렸다. 당시 조선일보(1954년 10월 30일 자)는 이 날의 풍경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직접 아기 부처의 제막 줄을 당겼고, “우리나라도 고적을 잘 보호하면 외국인들에게 큰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며 문화유산의 가치를 역설했다.

그는 감회가 남달랐는지, 부처님이 인도에서 건너와 서쪽으로 가신다는 내용의 ‘불종천립래(佛從天笠來)’로 시작하는 친필 한시를 남기기도 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인근 신산초등학교에서 군민 환영 대회까지 열릴 정도로 파주 전체가 들썩였던 하루였다.

건립 당시 동자불은 마애이불입상의 왼쪽 미륵불 어깨 바로 옆에, 7층 석탑은 그 뒤편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미륵불이 대통령의 염원을 품은 아기 부처를 보호하는 형상이었다.

그러나 권력은 영원하지 않았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면서, 그가 남긴 흔적들에 대한 시선도 차갑게 변했다. 불교계와 재야단체들은 “국가 보물인 고려시대 마애불의 원형을 훼손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인위적인 조형물을 덧붙였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결국 민주화의 열기가 뜨거웠던 1987년, 동자불과 7층 석탑은 ‘문화재 훼손’으로 철거되었다. 동자상과 7층석탑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종무소 구석으로 옮겨졌다.

오랫동안 잊혔던 동자상과 7층석탑은 2009년 당시 용암사 주지였던 태공 스님이 “잘난 역사든 못난 역사든, 이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라고 하면서 구석에 있던 동자불과 석탑을 삼성각 옆으로 자리를 옮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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