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는 생전에 일 안했다 카더라 – 김태회

지난달 말, 고향 마을 지인들과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중에 C라는 분의 이야기가 나왔다. 연세가 어느덧 구순을 넘겼는데도 정정하게 지내신다는 것이다. 지금도 규칙적으로 뒷산에 오르내리며 운동을 하고, 걸음걸이는 여전히 성하다. 누군가가 감탄 섞인 말로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하시다”고 하자, 곁에서 이런 말이 덧붙여졌다. “젊어서는 일을 안 했다지요.”
그 말에는 묘한 뉘앙스가 실려 있었다. 뼈 빠지게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 산다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그분이 일을 왜 안 했겠어요.”라고 짧게 받아쳤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걸 느낀 다른 분이 얼른 말을 바꿨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건 좋은 거지요.” 그 한마디로 대화는 다시 일상적인 쪽으로 흘러갔지만, 내 머릿속에는 오래된 기억 하나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이 이야기를 나는 이미 반세기 전, 아주 오래전에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말은 내가 젊었던 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0년이 훌쩍 넘은 때에 처음 들었던 말이다. 그때도 누군가 “C는 일을 안 해”라고 무심히 말했고, 나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기억이 있다. 그 말이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불만이나 오해에서 비롯된 말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가까이서 본 C의 모습으로는 ‘일을 안 했다’는 평가는 맞지 않았다. 농촌에서 태어나서 자라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밭에서 일하는 게 일상이다. 그 고된 육체노동을 즐기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C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그는 꼭 해야 할 최소한의 일, 즉 생계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인 노동은 했지만, 다른 농부들처럼 몸이 부서져라 일하지는 않았다.
이를 두고 ‘일을 안 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심한 왜곡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무작정 우직하게 일하기보다 힘을 덜 들이고 요령껏 일하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일을 하지 않고 그 엄혹하던 시절을 견딜 수 있었겠는가. 가족과 먹고살기 위해서 그는 분명 자기 몫의 노동을 해왔다. 그러나 누군가의 눈에는 그것이 ‘일을 안 하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이 글은 그를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실과 다르게 굳어져 버린 말. 즉 ‘카더라’라는 말이 어떻게 사람의 삶을 규정해 버리는지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내 고향은 60여 호 남짓 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6·25 전쟁 이후 극심한 빈곤 속에서 외지인이 들어와 정착하기에 딱히 넉넉한 곳은 아니었을 터이다. 그러나 각박한 도시를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에게 농촌은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농촌에는 아직 인심이 남아 있고, 품이라도 팔 수 있는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은 기술도, 땅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결국 자신의 몸 하나가 전 재산이었다. 흔히 말하듯 “ㅇㅇㅇㅇ만 차고 왔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처지였다. 그들 중 몇 사람은 나도 잘 안다. 다만 어디서 살다가 이리로 들어왔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말투나 억양으로 짐작해 보면, 전국 각지에서 유입된 사람들이었던 듯하다.
젊었을 적 그 사람들은 대부분 C에게 해라체로 말을 건넸고, 그만큼 연배도 비슷했던 것 같다. 그중 G라는 사람은 유독 입이 거칠어. 해라를 넘어 심한 농담과 험한 말까지 섞어 C와 주고받는 걸 여러 번 들었다. 바로 그 과정에서 “C는 일을 안 해!”라는 말도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런가?’ 하다가도, 또 곧 ‘아닌 것 같기도 한데’ 하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그들 사이의 농담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은 말 한마디가 반세기가 넘도록 살아남아, 지금 다시 되풀이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 말을 다시 들은 순간,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왜곡된 말일수록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말을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믿으며 끊임없이 옮긴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외지에서 들어온 그 사람들은 철저한 무산계급이었다. 오늘 몸을 움직여 품을 팔지 않으면 내일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C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대단한 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자는 아니었지만, 자급자족할 만큼의 자산은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몸이 부서져라 일하지 않아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무산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C가 자기들만큼 일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자기는 죽어라 일하고 있는데, C는 상대적으로 느긋해 보였을 것이다. 그 감정에는 부러움도 섞이고, 억울함도 스며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니 “C는 일을 안 해”라는 말은 객관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푸념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 그들은 육체노동만을 ‘일’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계획하고 조율하는 머리를 쓰는 일은 일로 여기지 않았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니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노동 방식은 곧잘 ‘일 안 한다’라는 말로 뭉뚱그려졌을 것이다.
이 작은 농촌 마을에서 그런 말은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옮겨 다녔고, 몇 차례 반복되는 사이 어느새 사실처럼 굳어졌다. 그 말은 확인되지 않은 채 ‘그렇다더라’라는 꼬리표를 달고 전해지다가, 결국 ‘그렇다’는 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카더라’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이제 그 ‘카더라’의 진원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무리한 노동 속에서 몸을 혹사하며 살았고, 대부분 C보다 훨씬 일찍 삶을 마감했다. 반면 C는 여전히 살아 있다. 구순이 넘은 지금까지도 자기 몸 상태를 살피며 적당히 움직이고, 꾸준히 운동하며 건강을 지키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오래 산 거야. 일 안 해서.”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몸을 써야만 살 수 있었고, C는 몸을 적당히 써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한쪽은 무리했고, 다른 한쪽은 절제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
결국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진실’이 아니라 ‘카더라’다. 사람은 떠나고 사실은 흐려졌지만, 말 한마디는 살아남아 여전히 사람들의 입을 옮겨 다닌다. 누구도 검증하지 않았고, 이제는 검증할 수도 없는 말이지만. 그 말은 여전히 한 사람의 삶을 규정하는 설명처럼 사용된다. 그래서 나는 ‘카더라’라는 말을 경계하게 된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 전체를 덮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사라지고, 말만 남는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오해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C의 구순 인생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오래된 ‘카더라’를 불러본다. ‘도대체 그대는 누구시오?’
▶지난번에 고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되새기며, 2025. 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