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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찍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 기술이다-이기상

사진의 정의가 ‘빛으로 그린 그림’에서 ‘데이터가 생성한 예술’로 확장되고 있다. 과거 사진가의 미덕은 무거운 장비를 들고 현장을 누비며,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숨을 죽이는 인내심에 있었다. 노출, 조리개, 셔터 속도의 삼박자를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제어하는 것이야말로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이 오랜 공식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이제 우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풍경조차 빛과 그림자의 질감을 완벽하게 계산해 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명령어 몇 줄이면 AI는 수십, 수백 장의 고품질 이미지를 쏟아낸다. 기술적 완성도는 이미 인간의 손을 떠나 알고리즘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사진가는 설 곳을 잃은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진가의 역할은 ‘오퍼레이터(Operator)’에서 ‘디렉터(Director)’이자 ‘큐레이터(Curator)’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이 셔터를 누르는 물리적인 찰나였다면, AI 시대의 결정적 순간은 생성된 수많은 결과물 중에서‘가장 탁월한 한 장을 골라내는 순간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뷰파인더 속 세상을 프레임으로 잘라내어 의미를 부여했듯이, 현대의 사진가는 무한히 생성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철학과 미적 기준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선택(Select)’함으로써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제 기술은 ‘어떻게 찍을 것인가(How)’의 문제에서 해방되었다. 대신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What)’, 그리고 ‘어떤 것이 아름다운가(Why)를 판단하는 안목(眼目)이 핵심 역량이 되었다. AI가 아무리 화려한 기교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해도, 그 이미지에 시대적 맥락을 입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서사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주한 이 디지털 블록과 같은 새로운 시각적 환경 속에서, 사진가는 이제 붓을 든 화가가 아니라 명작을 알아보는 감식안을 가진 수집가에 가까워져야 한다. 셔터를 누르는 행위 자체보다, 수만 가지의 가능성 중 단 하나를 선택해내는 그 고독한 결정의 과정. 그것이 바로 인공지능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기술’이자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다.

사진은 죽지 않았다. 단지 찍는 손에서 고르는 눈으로, 그 권력이 이동했을 뿐이다. pajuwiki_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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