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늦은 고백 4편-신수현
[4편] 마지막 부탁
장례식장은 철수 본가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언제 이런 곳에 장례식장이 생겼을까?’ 영희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옆에 같은 이름의 요양원 건물이 보였다. ‘요양원에 있다가 장례식장으로 가는 거구나. 나도 언젠가 그런 신세가 되겠지?’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장례식장 건물 주위에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마치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기라도 하듯 점잖게 소리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영희는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작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이순범과 이철수라는 이름이 보였다. 2호실이었다. 1호실과 2호실 두 개뿐이었다. 건물 외형은 작아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넓었다. 영희는 멀리 서 있는 철수를 보자마자 놀랐다. 맨 처음에는 그가 철수가 맞는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살이 빠진 그의 모습은 마치 허수아비가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삼 년 만에 마주한 철수는 딴 사람이었다. 검은색 두 줄이 둘려진 삼베로 된 완장을 왼팔에 차고 있었는데 맞지 않는 옷 때문에 그가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철수의 아들 민혁이가 입구에서 신발을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영희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 영정사진 앞에 섰다. 순범은 고요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학창 시절 철수네서 봤던 그 얼굴이었지만 주름이 깊게 팬 사진은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순범은 영희를 언제나 환한 미소로 반기며 딸처럼 이뻐했다. 가끔은 용돈을 손에 쥐여주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에 순범이 영희에게 나중에 우리 철수에게 꼭 시집와야 한다는 말을 건네서 그녀의 얼굴을 붉게 만든 적도 있었다. 영희는 고개를 숙여 눈을 지그시 감고 순범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하늘나라에서 더 이상 고통받지 않고 편안히 쉴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영희는 영정사진 앞에서 큰절을 두 번, 반절을 한 번 하고 철수와도 큰절 한 번과 반절을 한 번씩 했다. 그녀는 여윈 철수 얼굴을 보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통통해서 귀엽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볼살이 빠져 광대뼈가 도드라지게 솟아있는 얼굴은 마치 가시밭길을 한 참 걸어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벌겋게 퉁퉁 부어오른 눈과 까칠한 피부 때문인지 병자처럼 보였다.
“영희야, 와줘서 고맙다.”
“그래, 오랜만이다. 너 고생 많았다며.”
“고생은 뭐.”
철수는 밥 먹고 가라며 자리를 안내해줬다. 영희는 허기는 없었지만 안내된 자리에 앉아 나무젓가락 종이를 뜯었다. 한술 뜨고 있는데 동네 친구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준영이와 상우, 준호, 정재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스물에 떴으니 이십 년이 훌쩍 넘은 시간은 그들의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아이들이 영희 이름을 부르며 반갑다고 악수를 청했다. 영희는 미소지으며 반가움을 표현했지만 어쩐지 낯설었다. 친구들이라지만 동창일 뿐이다. 학창 시절 어울려 다닌 건 철수였다. 남자아이들이 술병을 따서 작은 잔에 따라 마시고 있었다. 영희는 술을 마시지 않는 혜경이 앞에 앉아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혜경이도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어 영희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대화는 부드럽게 이어졌다. 준영이 갑자기 영희 옆으로 와 앉으며 말을 건넸다.
“영희야, 반갑다. 삼 년 동안 너 왜 철수 버렸냐?”
“무슨 소리야, 벌써 취했냐?”
“철수가 너 맨날 보고 싶다고 그랬어.”
“뭐래? 연락을 하던가.”
준영이 피식 웃는다. 그러고는 무슨 비밀이라도 혼자 알고 있는 듯 눈을 교묘하게 가늘게 뜨고는 영희를 바라봤다. 영희는 피곤이 밀려왔다. 내일 출근하려면 적어도 열 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아이들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아. 눈치만 보고 있었다. 혜경이가 그만 가봐야겠다고 일어나자 영희도 잘됐다 싶어 같이 일어났다. 철수에게 인사를 전했다. 철수는 아쉬운 표정을 비추며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와줘서 고맙다. 조심히 가.”
“밥맛 없어도 끼니 잘 챙겨 먹어.”
영희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철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집어 바닥에 내려놓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철수가 속삭이듯 말했다.
“아참, 영희야, 나 너에게 할 말 있는데, 다 정리되면 연락할게.”
“응 그래. 언제든 연락해”
영희는 집으로 오면서 깊은 생각이 빠졌다. 철수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과연 무엇일까? 삼 년 동안 연락도 끊고 아버지에게만 매달려 살아낸 그가… 들어봤자 별일 아닐 거고 듣고 나면 답답함만 가중될 거란 생각에 머리를 흔들었다. 영희는 다시 바쁜 일상으로 빠져들었다. 철수 생각이 간혹 났다. 이제 좀 편히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더 이상 힘들지 않게 삶을 영위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핸드폰이 울렸다. ‘바보철수’라는 글자가 반짝였다. 영희는 비상계단을 통해 사무실 옥상으로 올라갔다.
“응, 철수야”
“영희야 잘 지내지?”
“나야 뭐, 큰일 치르느라 고생했다.”
“다들 도와주셔서 덕분에 잘 끝냈어. 내일모레 뭐해? 우리 바다 보러 가자.”
“뜬금없이 왠 바다?”
“너랑 바다가 보고 싶어. 마지막 부탁이야.”
“마지막?”
“그래 마지막이다. 앞으로 너 그만 괴롭히려고 그런다. 그러니 내 부탁 꼭 들어줘.”

생각해보니 철수는 바다를 좋아했다. 뜬금없는 것이 아니었다.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바다를 보러 강원도로 달려갔다. 바다 냄새를 맡고 나면 살아갈 기운이 생긴다는 철수의 말에 영희는 그런 것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했다. 둘 다 미혼일 때 몇 번인가 함께 바다를 보러 간 적이 있다. 파도가 흰 거품을 머금고 그들에게 달려들었을 때 영희는 반사적으로 뒤로 몇 걸음 달아났지만 철수는 가만히 서 있었다. 파도에 바지 밑단이 젖어 색이 진해졌다. 영희가 신발이 젖어서 어쩌냐는 걱정 섞인 말투로 물었을 때 철수는 여분의 양말과 신발이 차에 있노라고 말했다. 영희는 바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척을 해줬을 뿐이다.
영희는 산이 좋았다. 산에 오르면 몸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몸속에 산속의 좋은 공기를 입히면 세포들이 어려지고 싱싱해질 것 같았다. 철수는 산에 오르는 걸 심각할 정도로 싫어했다. 이십 대 때 영희는 싫다는 철수를 억지로 산에 끌고 간 적이 있다. 육백 미터밖에 되지 않는 낮은 산이었는데 철수는 도저히 올라가지 못하겠다고 중간에 퍼졌다. 영희는 황당했다가 당황스러웠다. 힘들어서 일어나지 못하겠다고 바위에 앉아 꼼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철수를 업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긴 막대기를 하나 주워다가 끝을 잡게 하고 질질 끌고 내려왔던 일이 생각났다.
문득 통화 중 그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만 괴롭히겠노라는 철수의 선언에 짚이는 것이 있었다. 언젠가 철수의 사촌이면서 같은 반 친구였던 혜정에게 흘러가는 소리로 넋두리를 한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철수의 연락이 부담스럽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영희로서는 결혼하고부터는 남편 눈치가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사람의 말은 한 사람 건너갈 때마다 본래의 뜻을 조금씩 잃기 마련이다. 혜정이는 철수에게 어떤 살을 붙여 말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철수가 연락을 단절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철수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연차 낸 날 아침 영희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을 먹여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들을 차에 태워 등교시킨 후 바로 역 주차장으로 갔다. 남편에게 연차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철수랑 단둘이 바다를 보러 간다면 기영 마음이 좋을 리 없겠다는 판단이 들자 목 언저리까지 나온 말을 꾹 눌렀다. 남편은 철수를 잘 안다. 집안 행사 때 몇 번 마주쳤다. 가끔 기영과 영희가 친정에 가면 경자는 거리낌 없이 철수 소식을 전하곤 했다.
기영이 철수를 처음 본건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영희는 기영과 반년 사귀었을 무렵 평소 생각하고 있던 반려자의 잣대에 올려놨을 때 합당한 인물임을 알았다. 영희는 기영 정도라면 자신의 인생을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기영을 집에 초대했을 때 경자는 소갈비에 잡채, 전까지 부치며 집안에 기름 냄새를 풍겼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는 말에 경자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여자는 자고로 때가 되면 시집을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 경자는 신이 났다. 평소 침착하고 생각이 깊은 영희가 데리고 온 남자라면 눈 감고라도 좋은 사람임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경자는 그릇에 반찬을 담았다. 상을 다 차릴 무렵 기영과 영희가 나란히 거실로 들어섰다. 경자는 백년손님 맞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셋은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그때 철수가 들어왔다. 영희는 현관문과 등져 앉아 보지 못했고 현관문을 마주 보고 있던 경자가 일어나 철수를 반겼다.
“철수야, 아직 밥 안 먹었으면 먹고 가.”
“네, 배고파요. 영희도 있네. 어쩐지 오고 싶더라니.”
영희는 하필 이런 날 철수가 왔다는 것이 못내 불편했다. 내가 온다는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고 귀신같이 찾아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영희는 평소와 다른 어색한 투로 철수를 맞았고, 기영에게 짧게 소개했다. 철수는 눈치 없게 탁자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평소 눈치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는데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는 표정으로 영희는 철수 머리통에 잠시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가 다시 기영에게 옮겼다. 기영에겐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영은 집에 도착하기 전부터 긴장한 모습이었는데 철수의 등장으로 긴장이 살짝 풀어진 듯 보였다.
영희는 바다를 보러 가기로 한 날 아침 철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몇 시 도착?” 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철수에게 전화가 왔다.
“영희야, 미안. 와이프가 갑자기 오늘 차를 써야 한다고…”
“내 차로 가면 되지, 어디서 몇 시에 만날까?”
철수는 영희 집 근처 역이름을 댔고, 연신 미안하다며 자신도 바로 출발할 거라며 역 도착 오 분 전 문자를 주면 집에서 출발하라고 했다. 미리 나와 있지 말라는 말을 몇 번 덧붙였다. 영희는 긴말하지 않고 알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철수는 기분이 좋은지 갑자기 소리를 내질렀다. 나뭇가지처럼 마른 그의 몸에서 나오는 소리치곤 제법 컸다.
“바다다.”
“바다가 그렇게 좋냐?”
“응.”
해수욕장 주차장에 차가 서자마자 철수는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마치 첫눈 내렸을 때 눈이 쌓인 길을 뛰어다니는 강아지처럼 보였다. 설렘이 온몸에 드러났다. 영희는 살짝 미소 띤 얼굴로 천천히 따라갔다. 영희가 옆에 왔을 때 철수가 고개를 돌려 말을 꺼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바다가 그렇게 보고 싶더라. 정말 미치도록.”
“너처럼 바다 좋아하는 사람은 첨 봤어.”
“나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지경이야. 나 죽으면 바다에 뿌려줬으면 좋겠다.”
“뭐래? 새파랗게 젊은 것이.”
“사실 청춘은 이미 지났지.”
“요즘 백세시대라자나, 넌 여태 반도 안 살았거든.”
“영희야, 너라도 기억해줘. 내가 죽으면 바다에 뿌려지길 간절히 바랐다고.”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고 바다나 실컷 봐.”
“근데, 넌 편지 다 버렸지?”
“무슨 편지?”
“군대서 너한테 보냈던 편지들 말이야.”
“아….그거 결혼 전에 짐 정리하면서 태워버렸어.”
“아…태우기까지, 비밀편지도 아닌데.”
철수는 실망한 표정으로 무심히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사실이 그랬다. 이년이 넘도록 주고받은 편지는 누가 봐도 연애편지는 아니었다. 비밀스러운 내용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철수는 군 생활이 힘들다며 징징거렸고 영희는 그런 철수를 위로한 흔적만 보일 뿐이다. 철수가 보낸 건 편지라기보다는 하루의 일과가 빠짐없이 적혀있고 삼시세끼 무엇을 먹었는지를 나열한 기록지 같은 성격의 종이였다. 무려 백 통이 넘는 편지 내용이 죄다 한결같이 단조롭고 무미건조하다는 것이 편지를 받는 영희로서는 더 놀라운 일이었다. 영희도 애써 무심한 말투로 건조하게 적어 보냈다. 철수에게 두 통의 편지가 오면 그제야 답장을 썼다. 가끔은 ‘보고 싶다’라는 문장이 보이길 간절히 바랐지만 찾을 수 없었다. 영희는 편지 첫 줄에 ‘보고 싶은 철수에게’라고 썼다가 지웠다. 그러고는 깨끗한 편지지에 “하이, 철수”라고 썼다. 그 당시 영희에게 철수의 편지는 나름 작은 행복이었다. 가끔은 그녀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을 함께 보냈다.
봄바람이 불어대는 바다는 생각보다 추웠다. 영희는 가방에서 꺼낸 스카프를 머리에 서둘러 둘렀다. 이리저리 날리던 머리카락과 귀가 베이지색 스카프에 모두 가려졌다. 영희는 그만 가자며 앞서가는 철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너무 말라서 툭 치면 쓰러질 듯 위태해 보였다. 사람이 죽고 화장한 후 흔적은 고운 가루뿐이다. 뜨거운 불에 모든 것은 증발하고 뼈 몇 마디뿐이라는 걸 아버지를 떠나보내던 화장터에서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것이 곱게 갈려 담긴 유골함을 안고 울었다.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수 많은 시간을 살아낸 끝은 몇 줌의 뼛가루라니 죽음은 그토록 가벼운 것이었다. 영희는 그 후 인생을 무겁게 살지 않기로 자신과 약속했다. 되도록 가볍게 살고자 노력했다. 심각하게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은 없다는 걸 알았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차피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없다. 영희는 그녀가 통제 가능한 일에만 관심을 두고 신경 썼다. 그때부터 새는 에너지를 붙잡을 수 있었다. 나머지는 내려놓았다. 그것이 삶을 살아내는 현명한 자세라는 걸 떠나는 아버지가 영희에게 준 선물인 셈이다. 그녀는 아버지 덕분에 더 자유롭게 살아낼 수 있었다.
갑자기 파도처럼 밀려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이 차올랐다. 정일은 무뚝뚝한 아버지였지만 속정이 깊었다. 영희는 정일이 자신의 아버지인 것을 언제나 감사했다. 엄마가 몸이 약한 탓에 영희만 낳고 더 이상의 아이를 포기했을 만큼 경자를 사랑했다. 평소 사이가 좋은 부모님을 마주할 때마다 그녀는 그 무엇보다 즐겁고 행복했다. 영희는 다시 고개를 들어 철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철수는 행복할까? 아니 행복하게 살았을까? 영희는 연민을 느끼며 뒷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영희는 물어보지 않았다. 철수가 진실을 말할 거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행복하지 않더라도 내 앞에서는 행복하다고 말할 테니깐. 적어도 영희가 본 철수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영희는 철수를 바라볼 때마다 자신은 행복한 부류에 속한다고… 철수와 비교해 보면 자신은 행복에 겨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가 지금 떠안고 있을 고통과 슬픔의 무게를 영희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순범을 보낸 상실감에 몸서리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철수는 늘 감정표현은 하지 않았다. 넋두리할 때도 있는 그대로의 상황설명만 장황하게 늘어놓을 뿐 정작 자신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철수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꽁꽁 숨기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탓에 영희는 철수가 안쓰러웠고 그를 바라볼 때마다 명치에 뭔가 걸린 느낌이었다.
순두부를 먹었다. 텔레비전에서 여러 번 방영되었다는 글과 사진이 도배된 유명한 맛집이었다. 순두부는 담백하고 고소했다. 철수는 순두부를 몇 숟가락 뜨고는 고스란히 남겼다. 요새 통 소화가 되지 않는다며 주머니에서 약통을 꺼내 몇 알의 약을 먹었다. 무슨 약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소화제라고 답했다. 입맛 좋은 영희만 밥그릇과 뚝배기를 비워냈다.
멀리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를 찾았다. 영희는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간혹 찻잔을 들어 홀짝였다. 철수는 가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서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영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잔을 이쪽저쪽으로 돌려가며 뚫어지게 보다가 시선을 영희에게 옮겼다. 잔을 향해 손을 뻗어 집을 때도 시선만은 영희를 향하고 있었다. 잔을 내려놓고는 철수가 가만히 불렀다.
“영희야.”
“응.”
“아냐.”
“뭐가?”
“그냥.”
“싱겁긴…. 넌 항상 그런 식이야.”
“내가 그렇지 뭐.”
언제나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하다가 끝내 침묵했다. 영희가 한없이 투명한 철수의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철수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창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범이 그리운 마음에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그녀도 정일이 죽고 한동안 자주 그랬으니깐. 정일의 부재가 믿어지지 않아 그리움에 자주 혼자 울었다. 영희는 철수에게 어떻게 살아갈 건지 궁금해서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 보고 싶었지만 말았다. 미적거리며 답을 회피할 것임을 알았다. 타인의 삶에 감놔라 배놔라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처럼 꼴불견도 없다. 영희는 가만히 철수를 바라보며 인생의 잔혹함에 대해 생각했다. 착한 철수에게 왜 세상은 같은 편이 되어 주지 않는 것에 분노했다.
늘 사납게 괴롭히고 시련을 주고 난처하게 굴었다. 한편으론 어쩌면 일부는 그런 상황을 철수가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철수는 늘 주저했다. 그에겐 쉬운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어려웠다. 선택의 기로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두려움에 주저앉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용기가 없는 걸까? 자신감이 부족한 걸까? 인생 뭐 있다고 저렇게 바들바들 떨면서 힘에 겨워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세상이 그를 괴롭히고 있는 건지 그가 그를 셀프로 괴롭히고 있는 건지 가끔은 헷갈렸다. 그녀가 철수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거나 이별, 인생이라는 것에 답은 없으니까. 삶은 한 편으로 너무나 수수께끼 같아서 알다가도 모를 것이기에…
장시간 운전한 탓에 몹시 피곤한 영희는 서둘러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여보 나 먼저 잘게.”
“응, 근데 당신 오늘 어디 갔었어?”
기영은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영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영희는 안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놀란 몸짓으로 소파에 앉은 남편을 바라봤다.
“어딜 가긴 어딜 가.”
“오늘 회사 안 갔잖아?”
“응?”
“오늘 아침 당신 옷걸이에 옷이 안 걸려 있던데?”
영희는 아차 싶었다. 십 년 동안 지켜온 습관 때문에 남편이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야만 했다.
“철수랑 바다 보고 왔어. 아버지 보내고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잘했네.”
“괜찮지?”
“뭐가?”
“마음이 언짢지 않냐구?”
“그런 거 없어.”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남편이 철수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기영이 처음 영희네 집에 방문했을 때 철수와 마주했던 날 밤, 영희는 물었었다. 혹시 철수가 우리 집에 들락거리는 거 불편하냐고 물었고 기영은 괜찮다고 했다. 자신도 아직도 연락하는 대학 동창 여자친구들이 몇 명 있다고도 밝혔다. 영희는 바로 알아챘다. 철수였기에 질투심이 발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작은 키에 어딘가 균형 잡히지 않은 얼굴은 누가 봐도 질투가 날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사람들의 질투심은 고만고만한 이들끼리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자신과 큰 차이가 나는 사람에겐 절대 질투심이 생겨날 리 없다.
5편 예고 “앞으로 너 그만 괴롭히려고 그런다.” 철수가 영희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관계에서 안다는 것이 방해인 것 같아요.
철수의 눈물과 삼킨 말이 무언지 철수만 알 텐데도 영희는 안다고 말하네요.
관계에서 안다는 건 무엇일까? 정의는 아닐 진데, 정의처럼 굴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희와 철수의 관계는 안다는 것에서 비롯된 잘못된 정의 결과처럼 씁쓸하네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다음화에서 이어질 이야기와 점점 끝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벌써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안다는 것, 남을 모두 알 수는 없겠죠. 다만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구요.
상대방을 안다는 것이 맞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나도 스스로를 다 모르는데, 남을 어떻게 다 알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님 편마다 댓글을 달아 주셨네요.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읽어주셔서 고마운 마음 한가득입니다.
바닷가에가서 무슨말이라도 할줄알았는데 눈물만보이는 철수가 아버지로 인한 눈물일까요.. 부인에 대한 눈물일까요..
반전. 서스펜스로 남편이 어디갔는지 물을 때 소름돋았어요.
궁금해서 못참으니 빨리 다음편으로갑니다!!
바닷가에서 무슨 말을 했더라면, 철수가 성급하게 이승의 삶을 마무리 짓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철수가 눈물을 흘린건 아무래도 영희를 두고 떠나는 아쉬움이었겠지요?^^
“반전, 서스펜스” 단어가 나와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궁금해 주시니 이 또한 저자로서 기쁨이 밀려드네요. 빨강머리님~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