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탄 용미리 임천조씨 종중묘역, 문화유산 지정 추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에 위치한 임천조씨 군자감정공파 종중 묘역이 문화재 지정을 위한 신청 절차를 밟고 있다. 2025년 8월 임천조씨 종중은 제2묘역을 중심으로 문화재 지정 신청을 진행 중이며, 이는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의 매장 문화와 학문적 전통을 보존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로 평가받고 있다.
3대 연속 장원급제, 조선시대 유일무이한 기록
이번 문화재 지정 신청의 핵심은 제2묘역에 안장된 3대 연속 장원급제 인물들이다. 14세 조원(1544~1595)이 1564년 진사시에 장원급제하며 시작된 이 전통은 그의 아들 15세 조희일(1575~1638)이 1601년, 손자 16세 조석형(1598~1656)이 1624년 진사시에 연이어 장원급제하면서 완성되었다. 이는 조선시대 전 기간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학문적 성취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조희일은 진사시 장원급제 당시 선조가 그의 시권을 보고 크게 칭찬했을 정도로 문재가 뛰어났으며, 예조참판까지 역임한 대표적인 문신이었다. 조석형은 광해군 때 아버지가 유배되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따라다니며 효성을 다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당대 최고 문인들이 참여한 신도비
제2묘역의 가장 큰 문화재적 가치는 조희일과 조석형 부자의 신도비이다. 이 신도비에는 송시열, 김수증, 김수항, 이의현, 민진원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 참여했다. 신도비의 비문과 글씨는 조선시대 금석문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으며, 당시 임천조씨 가문의 사회적 네트워크와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체계적으로 조성된 대규모 종중 묘역
임천조씨 묘역은 78번 지방도를 경계로 3개 구역으로 나뉘어 체계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제1묘역에는 12세 조익(1474~1547)부터 가문의 기반을 다진 초기 인물들이 안장되어 있으며, 제2묘역에는 3대 장원급제의 주인공들이, 제3묘역에는 왕실 외척으로 성장한 후손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제3묘역의 17세 조경창(1634~1694)은 인원왕후의 외조부이자 숙종의 장인인 김주신의 사위로, 임천조씨 가문이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게 된 핵심 인물이다. 22세 조기복(1773~1839)의 묘표는 추사 김정희가 직접 쓴 것으로 19세기 금석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 문화 연구의 보고
문화재 전문가들은 임천조씨 묘역이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의 매장 문화와 위계질서를 연구할 수 있는 완벽한 사례라고 평가한다. 묘역의 시대순·계층별 체계적 배치, 석물의 규모와 정교함의 차이 등은 당시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게 해준다.
임천조씨 종중 관계자는 “제2묘역을 중심으로 한 문화재 지정이 우선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향후 전체 묘역에 대한 종합적인 보존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묘역은 혜음원지 인근에 위치해 있어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역사적 맥락도 함께 고려되고 있다.
광탄면 용미리 재실
묘역1구역 전경
우리 동네에 있는 종중 묘역이군요.
종중 총무님이신 조진석 사장님이 종사에 열심이신데..
지난 30년 장의업에 종사하면서 본 바로..
유명조선국 가의대부 예조참판으로 시작이 되는 비석의 재질과 명확한 비문은 왕릉을 제외하고는..
頭篆의 서체는 물론 비문의 글자도 훌륭하고
국내 사대부 집안에서 처음 볼 정도로 상태가 좋네요.
문화 유산으로 지정이 되면 제일 먼저..
비석의 마모를 방지하고 현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비각이 필요하여 보이네요..